회개 /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강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으십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은 모두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마을입니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고을’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예수님께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던 곳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역시 카파르나움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을들로, 지금도 그곳에는 무너진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그 고을들을 꾸짖는 이유는 ‘회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회개란 무엇일까요? 회개란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것이라고 우리는 간단하게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나는 회개했다고 굳게 믿은 어떤 이가 자신의 삶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살아간다면 어떠할까요?
달리 말해서, 회개는 했지만, 나는 전과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면 어떠할까요?
그런데 "신부님, 그러면 회개라는 게 너무 엄격한 게 아닌가요?"
"좋은 게 좋은 것으로 하면 안 될까요?"
"보통 이런 것들은 회개했다고 하면 안 될까요?"
그 말이 우리끼리는 통할지 몰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었다"고 말입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소서."
이처럼 회개는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참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사 때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 하며 기도하지 않습니까?
이외에도 당연히 세례, 고해, 성체 성사로 회개의 길로 이끕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언제, 어떤 상화에서든지 끊임없이 회개의 길을 걸어가야 하며, 한 번 획기적이고 결정적으로 회개하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죄와 욕심과 옛 인간에 끌리고 기울어지고 거기로 되돌아가려는 근본적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평생 동안 매일 매 순간 그 경향과 다투고 죄와 욕심과 옛 인간에서 해방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회개는 죄에서의 해방과 하느님에게로 돌아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성덕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베푼 사랑과 은총의 은혜는 사람이 아무리 갚으려고 해도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회개와 쇄신과 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늘 회개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의 은혜를 갚는 것이 항상 부족하며, 그분에게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심정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심정을 항상 진지하게 유지한다면 결코 영적 나태함과 미지근함에 빠지지 않고, 영적 교만에도 빠지지 않으며, 겸허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회개와 쇄신과 성화와 구원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한국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