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론

하느님의 절절한 마음

Priest 2020. 7. 9. 10:00

연중 제14주일 및 주간 미사 본기도를 보면 이러합니다.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께서는 타락한 세상을 아들의 수난을 통해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종말에는 영원한 행복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세상은 하느님이 처음 창조한 모습이 아니라, 타락하고 무질서하게 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타락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구원하시려고 하십니다.

다만, 문제는 타락한 세상 속 인간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거부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호세아 예언서를 보면 하느님 마음이 미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부모가 소위 철없는 아이를 키우는 심정입니다.

부모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부모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갑니다.

이에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저는 읽으면서 이렇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임을 다행인 줄 알아라.

 

이처럼 오늘 독서가 성부 하느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 오늘 복음은 성자 하느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모든 권한을 주시고, 의식주까지 보장해 주십니다.

검소함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나만 믿고 따르라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다음은 당신이 다 알아서 해결해 주실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조언을 하십니다. 누구나 다 제자들을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것에 개의치하지 말고 자신의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독서에서 말씀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 타락한 세상을 일으키시기 위해 수난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에게 분노 대신에 사랑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아니 주님의 파스카로 하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호세아 예언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상숭배를 하거나,

그 은혜를 모른 척하거나, 주님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심판 날에 그 고통을 깨닫지 않을까 싶습니다.

 

복음 환호송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