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집중하기
어느 강의를 듣고 글감이 떠올라서 쓴다. 경제 빙하기에는 본질에 집중하라고 한다. 가령, 호텔이 안 될 때, 호텔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호텔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호텔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곳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자랑을 하자면, 나는 코로나 19 때, 교회의 본질에 집중을 했다. 교회란 무엇일까? 물론 위와 같이 창의적은 생각은 하지 못하였지만, 여러 생각을 하고 그 와중에 시도를 했다. 그러면서 교회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호텔의 예시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발상이 일루어지지 않은 건, 교회는 호텔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기에 그러한 것 같다. 호텔은 투숙객이 많이 와야 한다는 기존 생각과 교회 또한 신자가 많이 와야 한다는 기존 생각은 같지만, 본질에 있어서 교회는 건물과 장소가 아니기에 본질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 결과인 신자 수가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세상의 방법이 교세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대사회적 노출말이다. 종교라는 특성상 대사회적 노출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내부 결집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한 시대에만 반짝하는 것은 종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중과 사회의 검증(?) 그리고 진리의 검증, 역사의 판단 등이 이루어진 뒤에야 종교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날 것 같다. 사이비 종교가 자신들은 종교라고 아무리 외쳐도 현사회와 미래 사회가 인정하지 않으면 종교성은 없다고 판단하는 게 옳다.
갑자기 종교론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는데, 교회의 본질에 집중한 결과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신자들이 바라는 교회란 무엇일까? 그런데 그 교회가 진리의 관점에서 올바른 것인가? 사실 질문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교회가 바라는 신자상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바라는 교회상은 무엇인가? 왜냐하면 세상 구원을 위해 교회가 세워졌지만, 그렇다고 세상 위주의 교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주도권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있다. 이것에 맞추어야 하고, 그러기에 교회에 우리가 맞추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독재나 전체주의나 왕권주의의 방식도 아니며, 그렇다고 민주주의 방식도 하니다. 시노달리타스의 방식이며, 시노드 교회이다. 가령,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다. 소수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선거의 경우 약간의 차이로 패배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의 방식은 다수결이 아니다. 진리의 방식이다. 성령의 감도로 그리스도의 빛으로 하느님 나라로 향해 나아가는 방식이다. 모든 이에 모든 것이 되는 방식이다. 언뜻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이는 이상이 아니며 실재라고 믿는다. 이에 교회는 협력해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파견될 그리스도인을 배출하는 게 교회의 역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