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420)
대림 제2주간 금요일 + 찬미 예수님오늘 방송 미사를 손꼽아 기다렸던 교우 여러분,안녕하십니까! 먼저 사과 말씀을 올려야 할 것 같아요.사건은 저번 수요일 미사 때 ‘음성’이 나가지 못했습니다.저의 책임을 다시금 통감하며,제 불찰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기다림’입니다.현재 우리가 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1번 첫눈, 2번 코로나 19 백신, 3번 세검정 성당 미사, 4번 그리스도의 재림정답은 모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림 시기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기다리고 고대해야 하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미사 전례 말씀을 다음과 같이 나열만 해도 ‘기다림과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입당송은 영화롭게 내려오시며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는 주님을 노래합니다.본기도는 다시 오실 ..
대림 제2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을 보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하고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고생스러웠던 때를 뽑으라고 하면, 한 번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할 때이고, 두 번째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했을 때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유가 없는 상태입니다. 청년들과 성경 공부를 하면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시지도 않으면서,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셔서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한 마디로 고통을 주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질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악에 대한 물음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하느님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로 만드셨으면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
대림 제1주간 금요일(묵상) 오늘 복음은 눈먼 사람 둘이 예수님을 따라가서 시력을 되찾는 이야기이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다. 첫째, 눈먼 사람 둘은 앞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집 안까지 따라갈 수 있었을까? 둘째, 그들은 왜 예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다녔을까? 1) 눈먼 사람 둘은 앞이 보이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집 안까지 따라갈 수 있었을까? - 평소에 예수님의 동선까지 관해 알고 있었다. -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 위의 경우 둘 다. 2) 그들은 왜 예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다녔을까? 이점은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이때 그들은 사람들에게 치유 기적 이야기하지 않는 게 맞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든 안 하..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방법은?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맞게 그의 부르심 장면이 봉독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망을 던지는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에게 '쿨'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쿨'하게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정말이지, 속전속결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부르심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안드레아 사도와 같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이 속전속결이었습니다. 갑자기 성소가 와서,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부르심 당시에 누구와 상의하지 않고, 혼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었습니다.(조금 과장해서) 그런데 저의 부르심은 안드레아 사도와 비슷했지만..
“마라나 타! 오소서, 주 예수님!” +찬미 예수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야속하게도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11월 위령 성월 또한 벌써 마지막에 와 있고,전례력으로 가해 미사는 지금이 마지막입니다.2020년이 이제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슬픈 것은 코로나 19가 유행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다행히 내년에는 백신과 치료제가 나온다고 하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아직은 아니다’특히 신앙의 차원에서 매우 관대하게 이 생각을 적용합니다.아직 성당 갈 때가 아니다.아직 고해성사 볼 때가 아니다.조금만 더 있다가.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처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우리가 예상하는 때에 오시지 않습니다.그 날이 언제인지 하느님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소위 ‘꼼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을 무화과나무 혹은 모든 나무의 모습을 빗대어서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로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늦게 잎을 내기 때문에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는다는 것은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입니다. 잎사귀가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알리는 전조이듯이, 11절과 25절에서 언급한 재림의 전조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리는 전조가 됩니다. 이번 주간 내내 복음을 듣고 있으면 분명 언제가 무슨 일이 있겠구나 하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죽기 전에 종말을 목격할 줄로 믿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대가 지..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이번주간에 저희가 듣는 복음은 우울한 내용입니다. 종말의 전조들과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에 대한 언급,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겪고, 박해를 겪고, 혹은 전쟁이나 대재앙을 겪은 세대에게 이러한 내용들이 훨씬 더 와 닿을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들과 같은 마음이 들지 의문이 듭니다. 다소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19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백신이 전 세계에 보급이 되면 끝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또 다른 감염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손씻기와 마스크 착용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감염병 유행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러한 방..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1. 복음 내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박해 상황이 오더라도 인내해서 생명을 얻으라고 권고하십니다. 사도들은 실제로 오늘 복음에 언급된 유다인과 이방인의 박해를 받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회당 법정에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2코린 11,24) 아그리파스 임금(사도 26,1)과 총독들(19,12;24,2-3;25,6)에 호송되었으며, 사도들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박해를 받고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를 증언할 기회가 됩니다. 실제로 열두 사도, 스테파노,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게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어서도 있겠지만, 오늘 18절 구절인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